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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시종 이메일 ksjong4321@hanmail.net
작성일 15.04.01 조회수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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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금이 효자다
                                                                연금이 효자다

 

                                                                                               김시종

 

  봄바람이 불어온다. 심산계곡에도 봄의 기운이 머물고 있는 듯 겨우내 얼어붙었던 얼음장 같은 눈덩어리가 시절을 거스르지 못하고  맑은 물로 계곡을 적신다. 바위틈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산과 들녘에는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연초록 물감으로 채색되어 녹색 물결로 가득하다. 야생초와 초목이 봄볕을 즐기는 듯 바람을 타고 뭇사람에게 다가온다. 청명 한식이 되니 싱그러운 풀 냄새와 꽃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구구 팔팔 이삼 사라 하더니 인간의 수명도 의료 기술 발달과 복지제도 덕분에 장수하는 노인층이 증가 추세다. 주말이 되면 고속도로 휴게소나 화장실에 많은 노인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건강도 관리하면서 산행도 하고 고적지 여행도 즐기려는 노인들이 대다수다. 100세 시대 연금이 자식을 대신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하지만 낮이면 공원이나 지하철 등지에 노인 풍속도가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공직자는 누구나 때가 되면 퇴직 시기가 도래한다. 퇴직을 눈앞에 두고 마음 갈등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역시 정년퇴직할 때가 결정되고 보니 연금 문제로 고심하였다. 전액 연금으로 할까, 일시금으로 목돈을 찾을까, 20년 연금을 선택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어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당시 국가 경제사정은 은행 금리가 높았다. 퇴직을 앞둔 공직자에게 유혹의 손길이 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한평생 공무원으로 봉직하면서 의식주 해결과 남매를 대학까지 졸업시킨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았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퇴직 일시금을 신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20년을 연금으로 신청하고 퇴직 수당과 9년 치는 일시금으로 찾았었다.

 

  훗날 나라 경제가 파탄될 경우에 연금을 국가에 헌납할 각오를 스스로 다짐했었다. 정권이 바뀌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 전 국민이 경제 살리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전개될 때 나 또한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국가 경제 위기가 점차 벗어 날 기미가 엿보이기 시작했었다.

  1998년 퇴직 공직자는 대다수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정산하였다. 연금을 선호하지 않았던 동지들로부터 2~3년이 지나자 슬픈 소식을 들을 때 격세지감을 느꼈다. 한때 조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외로운 길을 혼자 보낼 때 내 가슴은 쓰리고 찢어질 듯 아팠다. 나 또한 야인이 된 지 올해가 16년이 되고 보니 무정한 세월은 강물 흐르듯이 인생무상이 절로 생각났다.

  그 해는 퇴직 공무원의 절반도 되지 않은 사람이 연금을 선택하였지만, 지금은 퇴직자의 대다수가 노후 대책을 위해 연금을 신청한다고 한다.

 

  내가 공직에 입문할 때는 남과 북은 냉전과 이데올로기 갈등이 극심하였고, 학생 데모는 날로 격화되었으며 치안 상태는 불안정한 격동기였다.

  젊은 시절 국가에 봉직하면서 나 혼자 생각한 바 있었다. 조상님과 가문에 잘못하는 공직자가 되지 않기를 다짐했었다. 재임 중 소중히 간직한 신념 같은 좌우명을 가슴에 새기며 공무에 임하였다.

  좌우명은 이러했다.

生 爲 祖 國 生, 死 爲 民 族 死.

(사는 것도 조국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민족을 위해 죽는다)는 집념(執念)이 있었기에 무난한 공직 생활을 대과(大過) 없이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 고희가 지난 노령에 국가 정책 배려로 배움터 지킴이로 봉사하면서 손자, 손녀 같은 어린 아동들과 어울리면서 학생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등하굣길 교통정리와 학교 폭력 예방 활동이 즐겁고, 제2 인생의 활력소가 되고 있어 마냥 즐겁기도 하였다.

 

  작금(昨今)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모든 것이 연금이라는 효자 덕분이 아닌가 싶다. 어려운 시기에 연금을 선택했던 나에게는 천만다행이라 여겨진다. 적은 돈이지만 아내의 절제된 생활과 불평불만 않은 것이 나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다. 내년이면 연금법이 개정된다는 소식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후배 경찰관에게 연금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싶다. 100세 시대 연금만 한 효자가 없듯이 “연금이 효자다”라는 유행어가 만연(蔓延)되는 것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매월 약정된 날짜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연금을 생각하면 자식보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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